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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 Christmas · X-mas

by hyehyehye_ 2025. 12. 20.

크리스마스는 오늘날 전 세계가 함께 즐기는 대표적인 축제이지만 그 기원과 의미를 들여다보면 종교, 역사, 문화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날이다.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 크리스마스가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해 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의 크리스마스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X-mas
X-mas

 

1. 크리스마스의 어원과 탄생일 논쟁. 12월 25일은 어떻게 선택되었는가

크리스마스는 영어로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뜻을 지닌 말이다. 흔히 X-mas라고 줄여 쓰기도 하는데 여기서 X는 영어 알파벳이 아니라 그리스어로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크리스토스의 첫 글자 Χ에서 유래하였다. 국가별 명칭도 다양하여 프랑스에서는 노엘, 이탈리아에서는 나탈레, 독일에서는 바이나흐텐이라 부른다.

12월 25일은 크리스마스 데이, 그 전날 밤은 크리스마스 이브로 불린다.

신약성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지만 정확한 날짜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이로 인해 초기 기독교 사회에서는 예수의 탄생일을 특정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부활이나 세례와 같은 사건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실제로 초대 교회에서는 1월 1일, 1월 6일, 3월 27일 등 다양한 날짜에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기도 했고 크리스마스 자체를 축하하지 않는 흐름도 존재했다. 3세기 신학자 오리게네스는 특정 인물의 생일을 축하하는 행위 자체가 이교적 관습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가 12월 25일로 정착된 것은 4세기 무렵이다. 교황 율리우스 1세 재위 시기(337~352년)를 전후하여 서방 교회를 중심으로 12월 25일이 공식적인 예수 탄생 기념일로 채택되었고 4세기 말에는 그리스도교 국가 전반에서 이 날짜가 널리 받아들여졌다. 이 결정에는 신학적 논의뿐 아니라 당시 사회, 문화적 환경이 큰 영향을 미쳤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초기 교부들의 신앙적 체험과 전승에 근거한 결정이라는 설명과 함께 기존 이교 축제와의 조화를 고려한 선택이었다는 해석이 함께 제시된다.

 

2. 동지 축제와 이교 문화. 크리스마스에 스며든 태양과 불의 상징

고대 사회에서 겨울 동지는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농경 사회에서 이 시기는 한 해의 수확을 마무리하고 혹독한 겨울을 앞두고 생존을 준비하는 전환점이었다. 로마와 게르만 사회에서는 이 시기에 대규모 축제가 열렸는데 이는 단순한 잔치가 아니라 자연과 신에게 감사를 바치고 새로운 태양의 탄생을 기원하는 종교적 의례였다.

로마에서는 12월 17일부터 24일까지 사투르날리아라는 농경신 사투르누스를 기리는 축제가 열렸다. 이 기간 동안에는 신분 질서가 일시적으로 해체되어 주인과 노예가 자리를 바꾸거나, 평소 금지되던 행동이 허용되었다. 집집마다 불을 밝히고 상록수로 장식했으며, 선물을 주고받는 관습도 이때 자리 잡았다. 12월 25일은 정복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로 불렸는데 이는 당시 로마에서 널리 퍼졌던 미트라스교의 핵심적인 축일이었다.

게르만족 역시 율이라는 동지 축제를 지냈다. 상록수는 겨울에도 생명을 유지하는 나무로서 영원성과 재생을 상징했고 커다란 통나무를 태우는 율 로그는 어둠을 몰아내고 새로운 빛을 맞이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러한 상징들은 훗날 크리스마스 트리와 장식 문화로 자연스럽게 흡수된다.

초기 교회는 이러한 이교 축제를 무조건 배척하기보다는 그 시기와 상징을 기독교적으로 재해석하는 전략을 택했다.

특히 미트라스교는 그리스도교와 경쟁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교회는 참된 빛이자 세상의 태양으로서 예수를 강조하며 기존의 태양 숭배 개념을 흡수했다. 콘스탄티누스 1세가 321년 일요일을 태양의 날로 공식화한 것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크리스마스는 이교적 요소와 기독교 신앙이 결합된 독특한 성격의 축일로 형성되었다.

 

3. 중세부터 종교개혁까지. 크리스마스를 둘러싼 갈등과 변화

중세에 들어서면서 크리스마스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3대 축일 가운데 하나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597년, 캔터베리의 아우구스티누스가 영국 전도를 시작했을 당시에도 크리스마스는 중요한 전도 수단이었다. 그는 크리스마스에 대규모 세례식을 거행함으로써 기독교의 권위를 각인시켰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기존의 이교 축제와 결합된 형태의 크리스마스가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상록수 장식, 가면극, 노래와 춤은 종교적 의미와 민속적 즐거움이 뒤섞인 모습이었다.

종교개혁 이후 크리스마스는 다시 논쟁의 대상이 된다.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1세 시대까지는 잉글랜드 교회의 주요 축일로 존중받았지만 17세기 퓨리탄 혁명기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퓨리탄들은 크리스마스를 로마 가톨릭의 잔재이자 방탕한 이교 축제로 간주했다. 그들은 폭음, 도박, 가면극, 향락을 강하게 비판하며 크리스마스 금지를 주장했다.

1647년 의회파는 크리스마스 금지 법안을 추진했고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공식적인 축하가 중단되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는 이미 민중의 삶 깊숙이 뿌리내린 문화였기 때문에 곳곳에서 반발과 폭동이 일어났다. 결국 완전한 금지는 불가능했고 왕정복고 이후 크리스마스는 다시 공식적인 축일로 부활한다.

이 시기는 크리스마스가 단순한 종교 행사를 넘어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지닌 날로 변화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4. 빅토리아 시대와 현대 크리스마스. 가족, 어린이, 그리고 음악의 축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크리스마스의 모습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노동 환경이 악화되며 크리스마스가 사라질 위기에 놓이기도 했지만 오히려 이 시기에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어린이를 중심으로 한 축제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웃 사랑과 자선, 도덕적 가치가 강조되었고, 종교적 의미와 세속적 즐거움이 균형을 이루게 되었다.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앨버트 공은 독일식 크리스마스 트리를 영국 왕실에 도입했고 이는 빠르게 대중화되었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은 크리스마스를 나눔과 자비의 날로 재정의하며 대중의 인식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시기 크리스마스 카드, 선물 교환, 정찬 문화가 정착되었고, 복싱 데이 역시 공식적인 휴일로 자리 잡았다.

음악 역시 크리스마스 문화의 핵심 요소다. 중세의 캐럴부터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헨델의 메시아, 그리고 19세기의 고요한 밤 거룩한 밤에 이르기까지 크리스마스 음악은 시대마다 새로운 형태로 발전해 왔다. 오늘날에는 징글벨, 화이트 크리스마스처럼 종교를 초월한 대중가요까지 포함되며 크리스마스는 전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문화적 축제로 확장되었다.

결국 크리스마스는 단순한 예수 탄생 기념일을 넘어 수세기에 걸친 역사와 문화, 종교와 인간의 삶이 겹겹이 쌓여 형성된 날이다.

이 복합적인 배경을 이해할 때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더욱 깊이 있고 풍성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Merry Christmas
Merry Christmas